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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c 말~1914년 벨에포크 시대 : 아름다운 새천년의 기운 (Edwardian period / the good years)

 

 사회적 배경

 새천년의 기운 벨에포크 시대에는 창의적인 예술과 과학의 발달 민주주의와 개인 자유의 급격한 신장에 더불어 과학, 문화, 예술 전반적으로 창의적인 변화와 실험이 시도되었다. 대표적으로 1900년 국제박람회가 파리에서 열려 파리 디자이너의 우수성을 알릴 만큼 기술이 고도발전한 시대이다. 또한 그 시대의 낙관주의와 삶의 즐거움이 풍미하는 분위기가 만연했고 과학기술의 발달로 산업 사회의 급속한 진행을 보였다. 높은 기술 발전은 자동차 문화의 확산과 기성복 등장 의류 제조 기술 발전, 백화점 구매의 중심이 되고 기성품의 등장으로 중류층의 수요자가 증가하기 시작했으며 자동차문화 확산은 먼지 막이 덧옷인 더스트 코트(dust coat)의 개발까지 영향을 미쳤다. 다시 말해 과학 기술이 패션에 영향을 미쳤다는 것이다. 이뿐만 아니라 신여성의 등장과 여성 참정권 운동 높은 교육 수준이 시작된 시기였다. 전문직 종사, 활동적인 운동, 여성 참정권 운동 등 신여성의 등장과 여권 인식 확장시키며 실용적인 여성 의복 등장을 가능케 했다.

 

파리박람회에 세워진 에펠탑

 

 복식미 : 여성 의복

 S-curve silhouette (1900-1910) 허리를 조이고 엉덩이를 매우 강조하는 디자인이 유행했다. 엉덩이는 꼭 맞게 허벅지부터 돌려지기 시작해 넓게 펼쳐지게 하여 트럼프 형태를 이루는 보다 실용적인 디자인이 나타났고 시폰, 오간디, 조젯, 크레이프, 얇은 리넨, 레이스 등 가볍고 부드러운 직물 사용했다. 이중적인 색채효과로 비치는 얇은 옷감을 오버 드레스 형태로 튜닉처럼 덧입는 형태가 나타났다. 소매, 스커트 자락에 레이스나 러플 장식 또는 고어(gore)가 들려 치마 밑으로 화려한 페티코트가 보이게 하는 등으로 장식적인 요소가 남아 있었다. 호블스커트(페그탑 스커트)와 미나레 스타일 파리 오트 꾸튀르 형성했고 이 시기 디자인 하우스 오픈했다. 벨에포크 대표적인 디자이너인 폴 푸아레의 등장으로 코르셋은 폐기되고 느슨한 가운 스타일이나 밑단을 좁게 한 호블(hobble) 스커트를 고안되었으며 이는 여성을 자유롭게 하는데 일조했다.  페그탑 스커트 유행했는데 이는 허리선에 드레이프를 넣어 엉덩이를 부풀고 아래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실루엣이었다. 동시에 직선적이고 단순한 기모노 슬리브나 하이 웨이스트라인, 대칭적이고 리듬이 잘 표현된 디자인을 선보이기도 했다. 미나레 스타일 다시 말해 호블 스커트 위에 느슨한 튜닉을 입은 스타일이 유행했다. 슈트 속에 블라우스를 받쳐 입는 테일러스 슈트를 모방하는 스타일이 생겨났다. 이국풍에 대한 관심 증가로 탱고 열풍이 일었고  타이트한 스커트와 타조 깃털 모자, 야외복 인기를 이끌었다. s- curve 실루엣의 유행에 따라 코르셋 또한 1904-05년에 인기가 최고점에 다다랐다. 다채로운 색상과 자수 레이스 장식으로 호화롭게 함과 동시에 테일러드슈트 여성의 활발한 사회 참여로 기능적이며 편안한 슈트가 유행하기도 했다.

 

복식미 : 남성 의복

 포멀 슈트 큰 변화를 보이지 않고 유행에 따른 디테일 변화만 나타났다. 비즈니스 남성복 (셔츠, 넥타이, 재킷, 베스트, 바지)의 유행과 슈트 차림이라는 특징이 있고 직종, 계절, 장소에 따라 디테일의 변화가 나타난다.

 

헤어스타일과 장신구

 깃털로 장식한 커다란 모자(루실, 메리 위도우 해트)가 유행했다. 남성 신발은 신고 벗기 편한 형태의 발목길이의 부츠이거나 네모난 구두이면서 검정, 갈색, 흰색이 성행했으며 혼합재료의 스포츠용 신발 또한 인기를 이끌었다. 여성의 경우에는 중간 높이의 힐, 단화, 비단 펌프스, 슬리퍼형의 구두가 유행되었고 장식된 스타킹 유행했다. 장신구 고가의 보석 착용하기 시작했고 모피가 대중적으로 보급되었으며 비즈나 자수 장식이 달린 가방이 발달했다. 

1914~1918 제1차 세계대전 : 삶의 변화를 초래한 세계전쟁

 

사회적 배경

 전쟁과 세계의 변화로 미국은 유럽의 패션 모방에서 벗어나 보그지 중심으로 미국 독자적 패션쇼를 시작했다. 일본의 러일 전쟁 승리는 일본 특유의 복식과 색감, 실루엣이 유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대량 생산의 촉진으로 기성복의 보급이 원활해지고 우편의 발달로 유행 확산 반경이 넓어지는 시기이기도 했다. 이때 아르데코 등장하는데 아르데코는 데스킬 운동의 신 조형주의 그리고 바우 하우스의 기능주의와 합리주의 표방했다. 피카소와 브라크의 입체파운동이 현대미술의 기반을 마련하기도 했다. 마지막으로 여성의 사회참여 증가가 있는데 전쟁기간 중 참전한 남성의 영역으로 편입되어 여성들의 활동 범위와 권익이 놀랍게 향상되는 계기가 되었다.

 

복식미 : 여성 의복 

 투피스나 코트 드레스를 선호하고 싱글이나 더블브레스트 재킷으로 허리에 벨트를 매어 스커트가 짧아지고 활동적이 되었다. 테일러드 재킷의 밀리터리룩이 유행했고 레그 오브 머튼 슬리브, 통(barrel) 모양의 코트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심플한 스타일의 복식이 많아졌지만 기능적인 복장인 것은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복식미 : 남성 의복

모닝코트의 정장 차림, 남성에게도 캐주얼 복식이 유행했다. 1920년대 자연스러운 어깨선 넓은 라펠, 허리선이 뚜렷한 재킷과 폭넓은 옥스퍼드 백 바지가 등장했다. 1930년대에 들어서는 어깨와 허리선 강조했고 잉글리시 드레이프 슈트 단추대신 지퍼 사용했다. 1940년대 전쟁기간 중에는 옷감 절약을 위해 재킷 길이가 짧아지고 의복에 제한이 생기기도 했다. 

 

헤어스타일과 장신구

여성의 경우 스커트가 좁아짐에 따라 모자가 더욱 커졌다. 챙이 넓고 깃털 장식을 한 커다란 모자나 크라운이 높고 챙이 좁은 모자가 유행했으며 토크(toque) 형 모자도 유행이었다. 남성은 중심이 움푹 들어간 중절모자나 양 옆 챙이 위로 말려 올라간 홈부르크 모자, 딱딱하고 크라운이 둥근 더비(derby), 더비와 비슷하나 승마용인 보울러(bowler) 등이 있었다. 신발과 장신구는 스커트가 짧아지면서 스타킹과 신발이 중요해져 스타킹이 화려하고 장식이 다양해졌다. 탱고슈즈와 단추나 끈으로 채우는 긴 부츠 혹은 앞이 뾰족하고 굽이 높은 구두 유행했다. 튼튼한 기능성 구두 추구했으며 전쟁으로 상을 치르는 분위기가 만연했다. 털로 만든 둥근 베개 모양의 토시, 가죽이나 헝겊의 핸드백 그리고 흰 장갑을 많이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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